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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지원사 세월호 12년…이제야, 엄마의 애도가 시작됐다

작성일 26-04-20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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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지원사 ▲막내 다영이 일기장 연 정희씨
지난 12일 전남 목포에서 서쪽으로 5.6㎞ 떨어진 섬 달리도. 정정희씨(58)가 원뚝(방조제) 위에 섰다. 회색빛 바다가 펼쳐진 수평선 끝까지 안개가 자욱했다. 그 너머로 목포 신항이 희미하게 보였다. 정희씨가 오랫동안 그곳을 바라봤다. 막내딸 다영이가 마지막으로 탔던 배가 그 항에 있다.
지난 2년 동안 이 섬을 떠돌았다. 새벽마다 원뚝 끝에 서서 수평선을 향해 중얼거렸고, 굴껍데기와 개흙을 손에 쥔 채 폐염전을 오갔다. 섬사람들은 정희씨가 미쳤다고 했다.
다영이가 어릴 때 정희씨 가족은 이곳에서 망둑어와 노래미를 잡았다. 바닷물에 휩쓸려갈까 봐 튜브를 꼭 끼고 놀던 막내딸 다영이도 곁에 있었다. 그는 2014년 봄 이후 자취를 감춘 지 10년 만에 홀로 섬에 돌아왔다. 다영이를 바다에 보낸 지 12년. 이날 정희씨는 처음으로 딸이 남긴 일기장을 한 장씩 넘겨보기 시작했다.
막내인 다영이는 새 학기엔 새 일기장을 샀다. 한 권을 다 쓰면 정희씨가 무늬가 예쁜 테이프로 다음 권을 이어 붙여줬다. 다영이는 껌종이 하나, 초콜릿 포장지 하나도 아까워 오밀조밀 오려서 붙여뒀다. 엄마를 닮은 눈으로 볼 것이 많았고 아빠를 닮은 입으로 말할 것이 많았다. 그날의 날씨, 친구와 주고받은 말, 느낀 감정을 남김없이 썼다.
다영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일기장에 적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걸음을 멈추면 바람이 나를 반겨줘요.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눈을 감으면 공기가 나를 상쾌하게 해줘요.” 다영이에겐 담아낼 세상이 차고 넘쳤다.
▲고 김다영양 모친 정정희씨
붓을 든 모습 좋아했기에…엄마는 꽃을 그리며 딸을 기리고
딸 전화엔 엄마 위한 목련 ‘가득’여행 전날에도 딸과 벚꽃 구경
삶의 끈 놓아버리고 싶던 순간그를 다시 움직이게 한 원동력
수많은 그림엔 다영이가 있었고“해야 함은 ‘할 수 있음’을 함축”딸의 일기장대로…살기로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하루 전날. 다영이는 엄마와 함께 벚꽃을 보고 왔다. 장기자랑 때 입을 악어 인형 옷을 챙기고 좋아하는 피어싱을 골랐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엔 아빠의 외투를 빌려 입고 오빠가 사준 시계를 찼다. 다음날인 2014년 4월16일은 다영이의 1번 버킷리스트가 이뤄질 날이었다. ‘제주도 땅 밟기.’ 그날 다영이는 제주도 땅을 밟고, 이틀 뒤 집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돌아와 그날의 날씨, 친구와 주고받은 말, 느낀 감정을 일기장에 써 내려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배는 뭍에 닿지 못했다. 100일 뒤 돌아온 다영이의 시계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지만 일기는 그날에 멈췄다.
그날 새벽 정희씨는 꿈을 꿨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고향 달리도에 있는 묘소 옆에서 목포 바다를 향해 무어라 외쳤다. 하지만 도통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창 꿈자리가 뒤숭숭하던 때였다. 속 한 번 안 썩이던 다영이가 꿈에서 자꾸만 엄마를 힘들게 했다.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 정희씨는 그 꿈을 떠올렸다. 남편은 단발머리 학생을 보고 다영이라며 달려갔다. 정희씨는 구조대원을 붙잡고 물었다. 우리 다영이가 어디에 있냐고. 멀리 바다에서 커다란 배가 가라앉고 있었다. 악몽이 스쳤다. ‘두 번 다시 애를 만져보지 못하겠구나.’ 정희씨가 까무러졌다.
바닷사람이 바다가 싫어졌다. 뱃사람이 배가 무서워졌다. 전국을 떠돌며 머리를 밀고 단식을 할 때도 짭짤한 비린내는 정희씨를 따라다녔다. 찬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으면 이상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어서 집 가서 다영이 밥 차려줘야 하는데.’ 멍하니 생각하다 소스라치면 다시 맨바닥이었다. 엄마 밥 솜씨가 끝내준다던 다영이는 없었다. 주변에서는 왜 아직도 저러느냐고, 유가족이 맞긴 하냐는 말들이 들려왔다. 정희씨는 1년여를 거리에서 싸우다 안산의 집으로 들어갔다.
‘마당발’이었던 정희씨가 말을 잃었다. 텔레비전을 보며 웃다가도 혀를 깨물었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틀어놓고서 울었다. “밑도 끝도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유 없이 몸이 아팠다. 세월이 흐를수록 정희씨는 거울을 보지 않았다. 거울 속 얼굴은 늙어가는데 정희씨의 시간은 앞으로 흐르지 않았다. 자꾸만 과거에 머물렀다. 돌아갈 수 없는데 돌아가고 싶어서 정희씨는 살고 싶지 않았다. 울면 유가족이 운다고, 웃으면 유가족이 웃는다고 사람들이 수군대도 따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상관없었다. 어차피 죽을 삶이었다.
정희씨를 살린 건 그림이었다. 그것만이 정희씨를 움직이게 했다. 다영이를 낳고서 처음 시작한 그림이었다. 다영이는 그림을 그리는 엄마를 좋아했다. 다영이의 휴대전화에선 엄마가 보고 그릴 수 있게 찍어둔 목련 사진이 한가득 나왔다. 정희씨는 그 꽃을 그렸다. 언젠가부터 그림은 온통 노란색이었다. 다영이를 잃고 그리는 그림은 다 다영이였다. 그래서 계속 그려야 했다. 2024년 정희씨는 서양화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지도교수는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선 자기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희씨는 10년 만에 고향 달리도를 다시 찾았다.
다영이와 걷던 고향의 원뚝을 정희씨가 홀로 걸었다. 집에서 해변을 잇는 800m의 길. 오른쪽 폐염전 너머 펄은 그대로였고 왼쪽 김발이 선 바다는 언제나처럼 회색빛이었다. 짭짤한 비린내가 희미했다. 갈매기 울음소리, 돌들이 파도에 휘감겨 쓸려가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왔다. 원뚝 끝에 도착해 수평선을 바라봤다. 10년 전 그날 꿈속에서 부모님이 외쳐대던 바다 끝에 손톱만 한 형체가 보였다. 그것이 목포 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라는 것을, 정희씨는 단번에 알아챘다.
정희씨는 그곳에서 욕을 쏟아냈다. 다영이를 앗아간 배를 향해 치를 떨며 있는 대로 욕을 퍼부었다. 건너편에서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날도 있었다. 바로 옆에 세월호가 있는데 어떻게 불꽃을 터뜨릴 수 있느냐고 정희씨는 또 화를 냈다. 세월호를 마주 보고 있는 부모님의 묘지를 향해서도 원망을 쏟아냈다. 왜 그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왜 저 바다가 다영이를 데려갈 것이라고 똑바로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진이 빠져 잠든 밤이면 꿈을 꿨다. 꿈속에서 정희씨는 다영이를 찾아 펄을 헤맸다. 열여덟을 지나 스무 살이 되고 서른이 되었을 다영이가 어딘가에 분명 살아 있는데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만져지지 않았다.
꿈에서 깨어나면 다시 펄과 해변을 떠돌았다. 그곳에서 마른 흙덩이와 굴껍데기, 떠밀려온 부표들을 주웠다. “원래 있던 곳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 그래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 꼭 자신 같았다. 정희씨는 그것들을 캔버스에 올려놓았다. 굴껍데기는 손바닥을 긁었고 흙덩이는 쉽게 바스러졌다. 자리를 잡지 못하면 떼어내고 다시 붙였다. 물감을 붓고 말리고 또 덧칠했다. 그 과정을 몇번이고 반복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멈춰야 할 때가 왔다. 그림 속엔 다영이가 있었다. 다영이를 그리워하는 정희씨가 있었다.
정희씨는 다시 바다 앞에 앉았다. 수십 번 바라본 세월호는 작고 보잘것없었다. 정희씨가 생각했다. ‘저 배는 죄가 없다.’ 그림을 다 완성할 즈음 정희씨의 마음속엔 한 가지 명제가 남았다. ‘살아야 한다.’
꿈 많은 다영이는 일기장 군데군데 똑같은 문장을 써놨다. “‘해야 함’은 ‘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그 글자들을 정희씨는 여전히 똑바로 마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내 자랑, 내 다영이가 옆에 있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 있는데 없어서, 아무리 헤매도 찾아지지 않는 꿈처럼 만질 수가 없어서 아팠다.
어떤 이는 물었다. 그림을 그려서 당신의 삶이 아주 달라질 것 같냐고. 정희씨는 대꾸한다. 달라지면 안 되느냐고. 유가족은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으면 안 되느냐고. 살아가면 안 되느냐고. 그렇게 그리다 보면 그림 속에서 다영이를 만난다. 살아진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살 수 있다. 다영이가 말했듯이, 해야 함은 할 수 있음을 함축하니까. 살아야 한다면 살 수 있다.
정희씨의 애도가 비로소 시작됐다.
▲고 김다영양 부친 김현동씨
딸이 남긴 숙제에…아빠는 ‘1호 재난안전학 석사’가 되었다
친구같은 딸 보내고 무너진 세상산업안전기사·재난관리사…농성 틈틈이 공부해 자격증 취득전문가로서 본 세월호 ‘엉망진창’
그는 ‘남은 다영이들’ 지키기 위해안전체험장을 만드는 게 꿈이다
지난 13일, 전남 목포 신항에서 만난 김현동씨(64)가 세월호 선체를 둘러봤다. 한 면이 검붉게 녹슨 선체는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다. 김씨가 선미 4층 부근을 가리켰다. “저기에 다영이가 있었어요.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거든요. 너무 가슴이 아프죠.”
김씨의 막내딸, 안산 단원고 2학년10반 다영이는 12년 전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딸을 보낸 뒤 안전관리자로 직업을 바꾼 김씨는 “세월호 다음 세대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3남매 중 막내인 다영이는 아빠와 “삶의 지향점이 같은 친구”였다. 갈대습지공원으로, 화랑유원지로 이곳저곳 쏘다녔다. 김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던 다영이를 데리고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가서 “5년 안에 여기서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영이는 그날 아빠와의 하루를 일기장에 꾹꾹 눌러썼다.
김씨는 외환위기로 어려운 시기에 태어난 다영이에게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주지 못했지만 사랑만큼은 넘치게 줄 수 있었다. 작은 식탁에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 그 ‘식구’를 지켜내는 것이 김씨의 소박한 꿈이었다.
그런 다영이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하자 김씨의 세계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김씨는 어느 날 ‘자녀가 어떻게 되느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머뭇대다 “아들이 둘이다”고 답한 뒤 한 달간 몸져누웠다.
그 뒤로 김씨는 다시는 다영이를 빼놓고 자신을 설명하지 않았다. 아빠만 믿었던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삭발하고 행진하는 동안에도 다영이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만 떠올랐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그는 2016년 산업안전기사 공부를 시작했다. 농성 중에도 손바닥에 암기 문구를 써가며 매달렸다. 안전을 공부하는 순간만큼은 다영이를 긍정적으로 기억하고 버틸 수 있었다.
김씨는 산업안전기사, 재난관리사 자격증을 잇달아 취득했다. 국내 1호로 재난안전학 석사학위도 받았다. 전문가의 시선으로 다시 본 세월호는 엉망진창이었다. 김씨는 안전 강사로 교육을 나갈 때마다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다영이 친구의 휴대전화에 남아 있던 마지막 장면이었다. 배가 기울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때문이었다. 안전 매뉴얼은 서류로만 존재했을 뿐 현장에는 없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가 구조적인 무책임이 낳은 결과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일터에서, 마을에서, 학교에서 반복되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모두 같은 구조 위에 놓여 있었다. 김씨는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법을 공부하며 비통한 진실 하나를 알게 됐다. 대부분의 안전 제도가 참사 이후에 만들어졌다. 삼풍백화점 붕괴를 계기로 1995년 재난관리법이 제정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생존 수영 교육 등이 의무화됐다. 누군가를 잃고 나서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고통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희망이기도 했다. ‘세월호 다음’이 있기 때문이다. 김씨에게 “또 다른 다영이들”을 지킬 방법이 남아 있었다.
이제 김씨의 꿈은 아내의 고향인 전남 목포 달리도의 폐교를 개조해 ‘안전체험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어느덧 서른 줄에 접어든 다영이 또래의 청년들이다.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는 그들을 보며 김씨는 안도한다. “저의 식구는 지키지 못했지만 우리 공동체는 지켜야죠. ‘해야 함은 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고 다영이가 말했거든요.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다영이가 남긴 평생의 숙제를 품고 김씨는 오늘도 ‘세월호 이후’의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에게 4월은 기억의 시간이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흐르며 옅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연하게 날이 서는 기억도 있다. 안산의 4·16 목공소가 떠오른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마음 둘 곳 없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모여 만든 공간이다. 그곳은 단순히 나무를 깎는 작업장이 아니다. 상실 이후의 시간을 견디고 부서진 존재의 파편들을 다시 이어 붙이는 수행의 장소다. 이전을 앞둔 목공소에서 만난 한 유가족의 말이 화인처럼 남았다. 자신들이 하는 일은 고사목을 가져다가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그것을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일이라고 했다. 도시 한편에서 안간힘을 다하여 살다가 죽은 나무를 자르고 깎고 다듬어 쓸모 있는 것으로 바꾸는 일. 거친 나무 표면을 매끄럽게 문지르는 목수의 마디 굵은 손가락 끝에는 슬픔을 어루만지는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재활용이 아니라, 상실을 다루는 그들만의 방식이었다.
나무를 다듬으며 그들은 스스로의 상처도 함께 어루만졌을 것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무너진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건 하나가 우리가 서 있던 자리를 송두리째 흔들 때, 우리는 거대한 상실의 늪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유한한 인간은 누구라도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는 순간을 겪을 수 있다. 문제는 ‘희생자 의식’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희생자 의식은 고통을 박제하고 자신과 세계를 단단히 묶어버린다. 그 자폐적 공간에서는 어떤 가능성도 자라지 못한다. 삶은 좁아지고, 결국 자신이 겪은 불행이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감옥이 된다.
그러나 고통이 우리를 완전히 규정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목공소의 고사목이 그러하듯, 삶의 균열을 통해 우리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질서를 엿보게 된다. 고통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선택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죽은 나무를 문갑으로, 의자로, 상패로 바꾸는 그 ‘전환의 능력’이야말로 무너진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안산의 작은 목공소에서 피어난 이 낮은 목소리는, 지금 전 세계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포성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오늘날 전쟁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드론이 하늘을 가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버튼 하나로 생사가 결정된다. 하이테크 시대의 전쟁은 비인간적일 만큼 효율적이다. 세계는 점점 더 위험한 곳이 되어가고, 우리는 그 불안을 일상처럼 견디며 산다.
시인 정현종의 시구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다른 무기가 없습니다/ 마음을 발사합니다.” 시인은 미사일과 전폭기가 나는 하늘에 두루미와 기러기, 도요새를 날려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폭력적인 현실에 적응한 사람들은 시인의 이런 상상을 어처구니없다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시적 상상력마저 사라진다면, 우리는 폭력의 무게에 짓눌려 더 깊은 우울 속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고사목이 다시 쓰임을 얻듯이, 인간에게도 전환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그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서 발현된다. 나무를 심는 사람, 씨를 뿌리는 사람, 고통받는 이들 곁에 조용히 머무는 사람, 그리고 타인의 슬픔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들. 이들은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 못할지언정,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무언가를 바꾸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바꾸는 일, 상실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일이다. 4·16 목공소에서 배운 것은 바로 이것이다. 무너진 세계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존엄이라는 씨앗을 심을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세상 도처에 우리가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절망을 딛고 일어나 더 나은 세계를 향해 함께 걷자고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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