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 대통령 글 기뻤다···한국서 증언할 기회 달라” 가자지구 생존 어린이들의 목소리
작성일 26-04-24 12:06본문
‘학살 생존자’인 동시에 ‘전쟁 범죄 목격자’인 이 어린이들은 전쟁피해 생존아동 단체인 ‘생존자들의 메아리’에서 활동 중이다. 이 단체는 최근 팔레스타인 장기 수감자 나엘 바르구티와 함께 이재명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낸 사실이 알려지며 국내에서 주목받았다. 이 대통령이 이스라엘 전쟁 범죄를 언급한 SNS 게시물을 본 뒤 “위로를 받았다”며 보내온 편지였다.
경향신문은 지난 16~19일 나흘간에 걸쳐 이 단체의 미디어 컨설턴트 무함마드 라마단 알암리티(40)씨와 서면 인터뷰했다. 알암리티는 “(이 단체는)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목격한 학살과 인권 침해를 직접 이야기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에서 출발했다”며 “국제무대에 가자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전쟁을 직접 목격한 생존 어린이들의 증언을 통해 국제 법정에서 책임자들을 추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의 메아리는 지난 2월 설립됐다. 나이대는 6세에서 18세까지 다양하다. 살던 집이 파괴돼 오갈 곳이 마땅찮은 아이들은 난민촌이나 텐트, 임시대피소에 모여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고 있다.
아이들은 가자 지구의 현 상황이 “모든 면에서 혹독하다”고 말한다. 가자 지구 사회개발부에 따르면 이달 기준 전쟁으로 인해 6만4616명의 어린이가 고아가 됐다. 가족과 친척 30명을 잃은 시합 알딘 무함마르(13)도 그 중 한 명이다. 알암리티는 “축구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평범한 소년이었던 무함마르의 집이 폭격돼 직계 가족과 친척 30명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교육 여건도 열악하다. 알암리티는 “텐트나 파괴된 건물을 학교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며 “읽기, 쓰기, 산수와 같은 기초 수업과 그림 그리기 등을 진행하지만 폭격이나 불안정한 치안 상황으로 수업은 자주 멈춘다”고 전했다. 그는 “그래도 아이들은 땅바닥이나 간이매트에 앉아 뭐든 더 듣고 배우고자 눈을 밝힌다”고 전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단지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이’가 아니라 “반드시 세상에 전달돼야 할 진실의 메아리”라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 등 세계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쓰며 상황을 알리고 있는 이유다.
알암리티는 “이 대통령이 올린 글을 보고 매우 기뻤고, 동시에 가자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세계 인류의 양심에 전달하고자 했다”며 “(공개 서한은) 진실한 어린이의 목소리가 어떤 정치적 연설보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의 완전한 중단, 어린이와 민간인 보호, 인도주의 지원 물자 반입, 학교 재개 등이 있다면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며 “국제 사회가 도덕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의 메아리는 경향신문에 가족 16명을 잃은 라마 아드함 아이드(15)의 새 편지도 보내왔다. 아이드는 45초 분량의 영상편지를 통해 “저와 가자 아이들을 대신해 정의의 편에 서준 (이재명) 대통령과 한국 국민께 감사하다”며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가서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세상과 여러분께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록밴드, 특히 여성 ‘프론트퍼슨’의 역사는 김윤아(52)의 데뷔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모던 록밴드 자우림은 데뷔곡 ‘헤이 헤이 헤이’로 단숨에 대중을 사로잡았고, 그 중심에는 김윤아가 있었다. 그의 등장은 ‘여성 보컬이 밴드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을 한국 대중음악에 각인시킨 ‘사건’에 가까웠다. 1990년대 후반부터 3호선 버터플라이, 줄리엣, 주주클럽, 더더 등 여성 보컬 밴드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김윤아는 자우림의 보컬이자 프로듀서다. 12장의 정규 앨범과 5장의 솔로 음반 대부분을 직접 작사·작곡했다. 자우림이 세상에 대한 날 선 비판이나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김윤아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밴드붐’을 이끄는 여성 아티스트가 됐다. 수많은 사람이 김윤아를 ‘존경하는 선배’라 말하지만, 김윤아는 자신을 “음악을 직업으로 삼은 평범한 사람”이라며 “30년 동안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의 한 합주실에서 만난 김윤아는 “여성 아티스트들이 굉장히 훌륭한 음악을 만들고 있는 시대”라면서도 “여성 아티스트들이 사회 이야기를 더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왔고 많은 음악가들이 이에 대한 좌절 혹은 승리에 대해 말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만큼 (음악이) 나오지 않아 개인적으로는 실망했다”며 “예술가는 아름다움과 슬픔을 노래하지만, 동시에 사회 구성원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여성으로 태어나서 목도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노래하는 사람이 있는가?’ 생각해봐도 그 수는 적다”며 “이름이 널리 알려진 아티스트들이 ‘보편타당’한 이야기만 다루는 경향이 있다.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는 것 같다. 여성 음악가의 숙제인 만큼, 더 많은 사람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윤아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직접 작곡한 노래를 통해 ‘음악이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부모의 반대로 음대 진학은 이루지 못했지만, 아마추어 밴드 활동을 거쳐 지금의 자우림으로 이어졌다. 데뷔와 동시에 승승장구했지만, 세상은 김윤아를 “케이크 위 체리”처럼 다루기 일쑤였다.
“당시 제가 무대에 서면 발부터 시작해서 얼굴로 카메라가 올라왔어요. 제가 쓴 곡인데도 ‘팀 작사·작곡인데 왜 건방지게 이름을 넣었느냐’거나 ‘저 여자애가 기타를 가짜로 치고 있다’ 그런 말들이 많았죠.”
여성을 향한 차별적인 시선에 대해 자주 목소리를 냈던 그도 최근에는 바뀐 시대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했다. “세상은 여자가 바꾸고 있잖아요. ‘여성’이라는 단어를 제 앞에 세우는 게 늘 자랑스럽다고 생각했어요.”
‘하하하쏭’ ‘매직카펫라이드’같은 신나는 밴드음악이 자우림의 한 축이라면, ‘샤이닝’ ‘낙화’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 청춘의 우울과 불안을 담은 곡들이 다른 한 축을 차지한다. 누군가는 그들의 음악이 ‘외톨이들의 마음을 달래준다’고도 하고 ‘자신의 삶을 구했다’고도 말한다. 그는 “누구에게는 치유가 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어쩌면 (치유가) 나의 소명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지난해 12월 발매된 자우림의 정규 12집 <라이프!>에 대해 ‘어떻게 30년 동안 중2병 감성을 유지하는거지’라는 반응을 남기기도 했다. 이에 김윤아는 “사람들이 우울, 불안 등의 감정이 담긴 걸 ‘중2 감성’ 이라 부르는 이유는 많은 성인들이 여전히 그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현재 청년들이 너무나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됐고, 결혼은커녕 자아실현도 어려운 상황이 사람들의 마음을 ‘중2병’에 머무르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곡을 작업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소셜미디어에서 다른 이들의 인생을 배우고 팬분들과 많이 대화하려고 노력한다”며 “곡을 쓸 때마다 내면의 동굴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중2 감성’이 나오는 건 내가 ‘오타쿠’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데뷔 30년 차를 맞은 자우림은 최근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달 11일부터는 자우림의 자체 콘텐츠 <자우림씨 외 2명>을 시작했다. ‘페이크 다큐’의 형식의 콘텐츠로, 이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격없이 망가지며 의외의 웃음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음악은 내 방식을 고집하지만, 그 외에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았던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다”며 “토크쇼 등 여러 방식을 고민했지만, 엄격하고 진지한 이미지를 좀 내려놓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를 흉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비웃는 블랙코미디를 할 수 있는 게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김윤아는 어머니이기도 하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을 때 ‘저 사람이 애 낳고 활동했으니까 나도 할 수 있을 거야’에서 ‘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아이를 갖는 것은 쉬운 결정도, 모두가 해야 하는 일도 아니지만 그런데도 아이를 갖고 싶은 여성 뮤지션이 있다면 ‘당신은 아이를 사랑으로 양육하면서 음악도 사랑으로 잘 키워나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인터뷰의 끝에서, 다시 ‘세상’ 이야기를 꺼냈다. “미친여자가 세상을 바꾼다고 하잖아요. 우리 함께 많이 사랑하고 많이 분노하고 힘껏 소리 지르고 존엄한 인생을 꾸려나갑시다.” 자우림은 올해도 그다음 해도, 음악과 공연을 통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김윤아는 “자우림의 음악이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죽을 때까지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12월, 미국의 한 역사학자는 이후 두고두고 회자될 글을 남겼다. 그는 비영리 독립언론 매체인 ‘톰디스패치’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이 초강대국 지위를 잃는 시기를 당시 주류 견해였던 2050년보다 훨씬 빠른 2025년쯤으로 예측하면서 “정치적 환멸과 절망의 흐름을 타고, 우렁찬 수사로 대통령직을 차지한 극우 애국주의자가 미국의 권위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며 군사적 보복이나 경제적 제재를 위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문제는 미국이 패권을 잃을 것인가가 아니라, 그 쇠퇴가 얼마나 급격하고 고통스러울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마치 미국의 현재 모습을 정확히 예측한 듯한 이 글을 쓴 주인공은 앨프리드 매코이 위스콘신대 매디슨캠퍼스 석좌교수다. 제국의 부상과 쇠퇴의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그는 지난 3월 대영제국의 무덤이 된 1956년 수에즈 운하 사태와 미·이란 전쟁이 초래한 호르무즈 해협 사태를 비교하면서, 둘 다 쇠락해 가는 제국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 ‘미시적 군사주의’(Micro-militarism)의 공통점을 보인다고 분석해 주목을 받았다.
매코이 교수는 지난 15일(현지시간) 경향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역사를 돌아보면 제국의 쇠퇴는 감정적·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지도자가 등장해 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며 일으키는 군사 작전의 실패로 가속화되곤 했다”며 미·이란이 합의해 전쟁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미국의 쇠퇴가 2025년쯤부터 시작될 수 있고, 극우 포퓰리스트 대통령이 출현할 것이란 예측을 16년 전에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2004년부터 2012년까지 4개 대륙 역사학자 140명이 참여한 ‘전환기의 제국들’이란 프로젝트를 이끌며 수많은 제국의 부상과 쇠퇴를 연구했다.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이지만 동시에 가장 연구가 덜 된 제국이다. 냉전 기간 소련과 중국,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미국을 ‘제국주의’라 비판했다. 이 때문에 미국 학자들에게 제국 연구는 정치적 금기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나는 당시 미국의 패권을 이해하기 위해 제국의 패러다임을 적용했고, 그 결과 패권의 침식이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하게 됐다. 다만 당시엔 부족해 보였던 것 중 하나가 대안 세력 혹은 도전 세력이었는데,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이 2014년 4조달러의 외환보유고를 축적하는 등 패권에 도전할 경제적 역량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보다 명확해졌다. 그때 나는 도발적으로 들릴 위험을 감수하고 미국의 패권 쇠퇴 시나리오 중 하나로 ‘세계가 미국을 존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등장하면서 결국 미 제국은 조용히 막을 내릴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이후 벌어진 여러 일이 그 예측의 타당성을 확인해 줬다고 생각한다.”
- 제국 쇠퇴의 징후이자 실제 원인으로 꼽은 ‘미시적 군사주의’에 대해 설명해달라.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공격도 이에 해당하는가.
“미시적 군사주의는 고대 아테네부터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소련에 이르기까지 쇠퇴하는 제국들이 빛바랜 영광을 되찾기 위해 종종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군사력을 동원했던 현상을 말한다. 대부분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제국 권력 쇠퇴의 가속화로 이어졌다. 1956년 영국의 수에즈 운하 개입이 그러한 사례였다. 당시 인도를 잃은 대영제국은 영향력이 중동 지역에 국한된 상태였다.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분노한 영국은 프랑스와 공모해 6척의 항공모함으로 이집트 군사력을 사실상 궤멸시켰다. 그때 이집트는 매우 단순하지만 탁월한 지정학적 묘수를 뒀다. 돌을 가득 채운 낡은 유조선으로 수에즈 운하를 봉쇄해 유럽의 페르시아만 원유 생명선을 끊어버린 것이다. 파운드화가 붕괴 직전에 몰리자 영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야 했다. 대영제국의 위엄은 순식간에 증발했고, 이후 완전히 해체되는 길에 접어들었다. 오늘날 트럼프 대통령이 페르시아만에서 하고 있는 일은 당시와 충격적일 정도로 유사하다. 미국은 군사적 대승을 거뒀지만, 이란은 돌 대신 2만달러짜리 샤헤드 드론을 사용해 호르무즈 해협을 틀어막았다.”
- 트럼프는 당신이 예측했던 극우 포퓰리스트 지도자의 특성과 일치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한 그가 미시적 군사주의의 함정에 빠진 것은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제국 권력의 쇠퇴를 가속화하는 미시적 군사 작전은 하나같이 자신이 특별한 사명을 갖고 있다고 믿는 불안정하고 허영심 넘치는 지도자에 의해 이뤄졌다. 기원전 414년 시라쿠사를 공격한 아테네의 니키아스부터 1578년 모로코를 침공한 포르투갈의 젊은 국왕 세바스티앙, 1920년 모로코 정복에 나선 스페인의 알폰소 13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그런 경우였다. 1956년 이집트를 공격한 앤서니 이든 영국 총리도 당시 영국 외무부로부터 감정적으로 불안정하단 평가를 받았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아예 대놓고 그에게 ‘제정신이냐’고 묻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는 취임사에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사명을 위해 신이 (암살 위험에서) 자신을 구해냈다고 말했다. 트럼프 특유의 성격과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자의식이 이 재앙의 핵심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과 전쟁을 벌이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는 알폰소 13세처럼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누구도 이 터무니없는 계획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압도적인 화력을 뽐냈으나, 동시에 요격미사일 재고 부족과 비대칭적 공격에 취약함을 드러냈다. 미국의 패권 유지에 군사력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미국은 전술적으로 여전히 우월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략적으로는 세계 주요 지역을 지배할 능력을 상실했다. 냉전 기간에는 세 개의 함대와 동맹국에 있는 수백 개의 공군 기지로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포위하는 성공적인 지정학적 전략을 구사했다. 미국은 ‘철의 장막’ 뒤에 있는 공산국가를 봉쇄했고, 그들이 밖으로 나오려 할 때 한국과 베트남에서 두 차례의 재래식 전쟁을 치렀다. 소련이 ‘미시적 군사주의’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도 미국은 중앙정보국(CIA) 작전으로 소련군의 패배를 유도했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요격 미사일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한국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포대 일부를 반출해야 했다. 이는 미국이 본질적으로 두 개의 전선을 유지할 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란과 같은 3등급(제한적) 강국을 상대로 한 작전은 감당할 수 있지만, 두 개의 중간 규모 작전을 동시에 수행하거나, 어쩌면 중국 같은 강대국을 상대로 한 대규모 작전은 한 개도 수행하기 어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이것이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아마 산업 스파이 활동을 통해 미국이 보유한 요격 미사일 수를 매우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미국이 한 발씩 발사할 때마다 숫자를 세고 있을 것이다.”
- 이번 전쟁에서 가장 눈에 띈 변화는 동맹 중 아무도 미국과 함께 싸우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난 80년간 단독으로 세계를 지배한 것이 아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물론 일본, 한국, 필리핀, 호주 등과 맺은 일련의 양자 협약들이 미국 지정학 권력의 근간이었다. 2차 세계대전은 위대한 연합 전쟁이었고 한국전쟁은 20개국 이상의 동맹들이 병력과 군수 물자를 제공했다. 베트남 전쟁 때는 한국도 5만 명의 한국군을 파병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도 많은 동맹국이 참전했다. 미국은 항상 동맹과 신중하게 사전 협의를 하고, 그들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 공을 들였다. 정보 공유, 기지 접근권, 경제·병력 지원을 받기 위해선 동맹의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선 동맹 중 단 한 나라도 미국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는 동지와 적을 가리지 않고 강압적 전술을 구사한 트럼프 외교정책의 논리적 귀결이다. 그는 오랜 무역 파트너들에게 자의적인 관세를 부과하고 80년에 걸쳐 구축한 미국의 동맹 자산을 함부로 훼손했다. 그 결과 동맹들은 자신들 역시 호르무즈 해협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음에도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이는 미국 리더십의 소멸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심지어 북반구 농부들에게 비료가 공급돼야 할 봄 파종 시기에 호르무즈 해협을 위험에 빠뜨려 세계 식량 공급을 차단했다. 그 극도로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중국이 훨씬 안정된 세계 강국처럼 보일 정도다.”
- 당신은 패권의 전환이 늘 새로운 에너지 혁명과 함께 일어났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화석 에너지 회귀 역시 미국의 영향력 쇠퇴에 일조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 500년을 돌이켜보면, 새로 부상하는 모든 제국은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 혁명을 주도함으로써 권력을 얻었다. 이베리아 제국은 대서양 노예무역과 플랜테이션 시스템을 발명했는데, 이는 인체의 칼로리 출력을 극대화한 것이다. 그들은 아프리카 노예 노동력의 대규모 착취를 통해 근대 초기 세계 경제를 주도했다. 다음 강대국인 네덜란드는 풍력을 활용한 세계 최초의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적은 선원으로도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있는 플류트 선박을 개발해 인도네시아부터 미국 맨해튼 섬까지 누비고 다니며 글로벌 제국을 건설했다. 이후 대영제국은 석탄 에너지로 산업혁명을 주도했으며, 그 뒤를 이은 미국은 석탄에서 석유로의 전환을 이끌었다. 그리고 현재 대체 에너지 혁명을 주도하는 것은 중국이다. 조 바이든 전 행정부가 녹색 에너지 혁명을 위해 1조달러 규모의 이니셔티브를 개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모두 폐기했다. 이는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사실상 경제적 자살행위다. 미국에 남은 마지막 제조업인 자동차 산업까지 (전기차 경쟁에서) 도태되게 만들고 있다. 또한 태양광 에너지는 가장 싼 화석연료보다 40%가량 저렴하며 기술 혁신은 앞으로 그 격차를 더욱 벌릴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사회 모든 측면의 생산 비용을 높이는 낡은 에너지 인프라에 계속 묶여 있게 될 것이다.”
- 미국의 패권이 없는 세상은 그 이전보다 나은 세상인가, 위험한 세상인가.
“미국의 패권 행사에 과잉과 위선이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미국이 운영한 제국은 이전의 식민 제국과 달랐다. 미국은 모든 국민이 자신의 국가를 가져야 하며, 그 국가는 불가침 주권을 지녀야 한다는 국제 체제를 구축했다. 또 빈곤과 질병을 완화하기 위해 유엔 기구와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해외 원조를 이끌었다. 우리는 (미국 주도 질서가 완전히 붕괴하고 나면) 미국의 패권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한 세계 질서가 사라지면 다극 체제가 될 것인데,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글로벌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한 이때 그러한 역량이 약화한다는 것이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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